일상 곳곳에 널린 트라우마(중앙일보 건강한 가족 2023. 4. 3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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작성자 김혜정미술치료연구소관련링크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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일상 곳곳에 널린 트라우마, 오래 묵히면 큰 병 얻고 삶 무너져
심리적 외상 바로 알기
요즘 주변에서 대화할 때 ‘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’(PTSD·Post-traumatic stress disorder)를 언급하는 이들이 많아졌다. 젊은 세대에선 ‘PTSD 온다’는 말이 일종의 유행어처럼 쓰인다. 학교폭력을 소재로 한 드라마를 보고 자신의 학창 시절이 떠오른다며 ‘PTSD 왔다’고 말하거나 직장 선배가 과격한 언행을 했을 때 ‘PTSD 올 것 같다’고 표현하는 식이다.
의학적으로 PTSD는 트라우마를 일으킨 사건 이후 나타나는 불안 장애를 말한다. 트라우마는 죽음·질병·위협과 관련한 사건을 경험하거나 목격한 후 겪는 심리적 외상, 즉 마음의 큰 충격을 뜻한다. 전쟁이나 자연재해, 교통사고, 화재, 범죄 등이 대표적이다.
개인에 따라 외상 후 성장 경험도
그런데 이런 극한 상황에서뿐 아니라 일상생활 도처에 널린 크고 작은 개인적인 문제 역시 트라우마를 유발할 수 있다. 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이나 사망, 지나친 훈육 방식, 친구들의 따돌림, 부부 갈등, 불쾌한 성적 경험 등이다. “개인적인 스몰 트라우마가 반복될 때도 큰 재난·사건으로 인한 트라우마와 비슷한 영향을 줄 수 있다”고 설명한다.
트라우마는 뇌에 변화를 유발한다. 스트레스와 관련 있는 편도체, 해마, 전두엽 피질 등에 영향을 미쳐 이들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하게 한다. 뇌가 과잉 경계 모드가 돼 감정·충동을 억제하는 데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. 이로 인해 트라우마 상황이 발생하면 극도의 긴장 상태가 이어지면서 몸과 마음에 다양한 증상을 초래한다. 피곤함, 두통, 소화불량, 식욕부진, 손발 저림 등의 신체 증상이 생길 수 있고 불안, 걱정, 원망, 화남, 슬픔 등의 감정 반응이 나타난다.
증상을 겪었다고 해서 모두 치료를 받아야 하는 건 아니다. 대다수는 수개월이 지나면 예전 상태로 회복한다. “큰일을 겪으면 당연히 충격이나 공포, 놀람, 무기력, 혼돈의 감정을 경험할 수 있으며”, “이런 감정은 또다시 닥쳐올 수 있는 위험에 대처하기 위한 준비를 돕는다”고 말한다. 오히려 트라우마 경험자의 5~10%는 불가피한 상황을 조금씩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것을 넘어 긍정적인 변화를 끌어낸다. 개인적인 역량과 삶에 대한 만족도가 트라우마 사건을 겪기 이전보다 더 향상되는 ‘외상 후 성장’이다.
PTSD가 무서운 건 일상을 무너뜨린다는 점이다. 학생의 경우 등교를 거부하거나 학업에 집중하지 못하며 외부 출입 자체에 어려움을 겪기 쉽다. 성인 역시 직장인, 가정주부처럼 기존에 잘하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를 수 있다. “PTSD가 만성화하면 다양한 건강상 어려움을 초래할 수 있으며”, “아동기에 겪은 부정적 경험은 성인이 된 후 알코올중독이나 약물 남용, 고도 비만, 우울증, 심장 질환, 암, 만성 폐 질환 등과 강력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연구결과가 있다.”
따라서 트라우마를 떨쳐내도록 도와 PTSD로 악화하는 것을 막는 것이 중요하다. 주변에 트라우마로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정서적인 지지를 해주는 게 급선무다. 함께 시간을 보내고 대화함으로써 감정적인 해소를 돕고 안정감을 유도한다. 평범한 일상을 유지할 수 있도록 계속 용기를 북돋워 줘야 한다. 또한 향후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을 전달하고 받을 수 있는 도움이 뭔지 세심하게 알려줘 심리적으로 안정을 취할 수 있도록 한다.
‘마음먹기 달렸다’식 조언은 금물
마음의 고통을 해결해 주려고 애쓰기보다 그 사람이 힘들어하는 점을 도와주는 편이 낫다. ‘네 맘 먹기에 달렸어’ ‘다 잊어버리면 된다’는 식의 섣부른 조언은 도움되지 않는다. 개인마다 기억이 처리되는 시간이 다르므로 충분히 기다려주는 게 좋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.
PTSD가 의심될 땐 전문적인 심리치료가 요구된다. 잘못된 생각을 수정하고 트라우마 사건을 직면할 수 있도록 돕는 인지행동치료가 효과적이다. 학습된 공포를 역으로 되돌려 사고에 대해 편안한 감정을 느끼도록 학습하는 노출 치료도 도움된다. 증상이 심할 땐 약물치료를 병행하는 게 좋다. 항우울제나 기분 안정제, 항불안제 등이 치료에 쓰인다. 트라우마에 더는 휘둘리지 않고 다른 많은 기억 중 하나로 저장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게 중요하며 주변의 지지가 있다면 많은 도움이 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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